여행 스케치/국내

화성 융릉, 건릉 :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조선의 왕릉

꿈나무 여행작가 2024. 9. 15. 10:35
반응형

융릉과 건릉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22대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

 

융릉은 사도세자(추존 장조:1735~1762)와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 1735~1815)의 능으로 처음에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조성이 되었습니다. 장조(사도세자)가 세자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수은묘"라고 부르다가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올라 "영우원"이라 하였습니다. 정조 13년 (1789년)에 현재 자리로 옮긴 후 이름은 "현륭원"으로 바꾸었고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건릉은 정조 (1752~1800, 재위1776~1800)와 효의왕후 김씨(1753~1821)의 능으로 정조가 세상을 떠난 직후 현륭원 동쪽에 조성하였습니다. 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건릉을 현재 자리로 옮긴 후 합장하였습니다. 

 

 

관람시간

- 2월 ~5월, 9월 ~10월   09:00~18:00
- 6~8월 09:00~18:30
- 11월~1월 09:00~17:30
  (매표 마감은 관람 종료 1시간 전)
- 매주 월요일 휴관

 

화성 융릉과 건릉 입구

 

관람요금

- 개인 1,000원 단체(10인 이상) 800원 
- 무료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국민
  만18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외국인
  장애인, 임산부, 다자녀 부모, 국가유공자, 한복착용자
  효행우수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융릉 건릉 역사문화관

 

융릉 건릉 역사문화관을 먼저 둘러보구요. 
영화 "사도"를 보고 가면  더 좋아요.

 

사도세자(장조)의 능, 융릉 가는 길

 

장조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사도세자 또는 장헌세자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영조 25년(1749) 영조의 어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 소론으로 당론이 분립되어 있던 당시 상황에서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를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조와의 갈등이 깊어졌고 1762년(영조 38년)에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 속에 갇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을 찾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영월 장릉(단종의 능)에 갔을 때도 사람들로 붐볐더랬어요. 

 

홍살문

 

홍살문을 지나 정면에 보이는 곳이 정자각, 왼쪽이 수라간.  오른쪽이 수복방입니다. 
다른 조선왕릉도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홍살문은 신성한 장소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의 문입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현재까지 600여년 간 왕과 앙비의 기일에 제향을 계속하고 있다는데요.  
정자각은 왕릉에 묻힌 왕과 왕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위에서 본 모습이 丁자와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수라간은 제사 때 올리는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는 곳, 수복방은 조선시대 왕릉 관리자인 수복들이 임시로 머무르는 곳입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정자각까지 뻗어있는 길이있는데 왼쪽 조금 높은 길을 향로, 오른쪽 낮은 길을 어로라고 합니다. 
향로로는 제사 때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들고 가고요. 제사를 지내러 온 왕은 어로로 다녔습니다. 

 

융릉의 정자각

 

융릉

 

 

정자각 오른쪽에는 왕과 왕비의 생애에 대해 적은 비석을 보호하는 건물인 비각이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거북이 모양의 받침을 한 거대한 신도비를 세웠으나 후기에는 무덤의 이름과 주인공에 대해 간단히 적은 표석을 세웠다고 하네요. 

 

융릉

 

부모의 눈으로 본 영화 "사도"는 참 마음이 아팠던 영화였습니다. 
"한중록"의 작가로 유명한 사도세자의 비인 혜경궁 홍씨와 합장릉인 융릉.

 

 

초록의 신선함을 느끼며 그들의 일생을 생각해 보았네요. 

 

 

건릉으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나무 숲도 우거져 있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 건릉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해 효심이 매우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뒤주에 갇혀 사망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묘를 이 곳으로 옮기고 자주 참배 하였습니다. 

 

건릉의 홍살문

 

조선 왕릉의 기본 구성은 비슷한 구조를 가져서 융릉을 본 후 건릉은 너무나 흡사한 모습.

 

건릉의 정자각

 

건릉

 

느낌인지는 몰라도 재위했던 왕의 무덤이 좀 더 웅장하고 잘 꾸며진 듯한..

 

 

아버지 사도 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노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소론과 남인 등 다양한 세력을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는 등 왕권 강화에 노력한 정조. 
정조가 남긴 업적은 그 밖에도 많잖아요. 
정조가 오래 재위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망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보면 참 안타깝지요. 

 

건릉

 

 

나무 숲이 그나마 우거진 곳이라 더운 여름에 힘들지 않게 산책한 듯 관람을 마친 거 같아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런 우리나라 문화재이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릉 스탬프 투어 다녀도 좋을 꺼 같네요. 

 

위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 조선 왕릉

조선왕릉은 총 42가 전해지며 추존 왕과 그의 왕비의 능까지 포함하면 총 50기입니다.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훼손없이 온전히 남아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로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었습니다. 등재가 된 것은 40기 뿐인데요. 나머지 2기인 제릉과 후릉이 북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2기의 능이 제외됐습니다.  

반응형